에세이

일상이 여행으로 다가올 때에

손님사절 2009. 5. 23. 22:11
인천사람에게... 서울에서 인천사람들에게 하는 소리는 "멀리서 왔다."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하기야 그럴 법도 한 것이 서울가는 지하철 안도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전투처럼 치열하고 말할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 끼리의 경쟁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런 현상을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분들은 인천사람에게 "힘드시죠?"라는 말을 건넨다.

업무 특성상 야근이 많은 편인데, 간혹 밤을 꼴딱 새고 해가 뜰랑 말랑 하는 순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가는 길에 하늘을 보면 촌스런 진곤색 양복색 처럼 차츰 밝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졸린 몸을 해뜨기 전에 뉘이고자 발걸음을 빨리 옮기고 누가 들을 새라 후다닥 정리를 하고 다이빙하듯 침대위로 뛰어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정오부터 맞이하는 하루는 익숙치가 않다. 그런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기만 하다. 어쩌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대학생활 그 시간들을 그렇게 "폐인"처럼 보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일상의 특이점은 바로 늘 보는 공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간혹 맞이하는 시간에서 오는 것이었다.


서울과 인천을 오갈 때는 오는 길이 여러갈래가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여의치 않을 것 같을 때에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도심에서 타는 지하철의 매력은 늘 한강다리는 건너는 순간에 있다. 그런 구간은 노량진과 용산사이 구간, 당산에서 합정으로 당산대교를 건너는 구간, 청담에서 뚝섬유원지 가는 청담대교 구간들이 지하철의 절경이다. 그 중에서 최고를 뽑자면 청담대교가 아닐까 한다. 특히 청담대교의 절경을 느끼기 위해서는 청담역에서 타면 안되고 시작점인 온수에서 타야 한다.

지루한 사람구경을 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경치를 보다가 한순간에 뚫리는 화창한 한강물을 만나면 날이 흐려도 터질듯한 상쾌함이 밀려온다. 물론 여기서 한 여름날의 파란하늘에 한강공원의 초록이 섞이면 더욱 상쾌함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 상쾌함을 가지고 건대입구역으로 들어서면 젊은 냄새가 싱싱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마 인천사람들(또는 부천사람들)만이 지루한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하나의 낙이다. 게다가 거의 다 왔다라는 인식까지 고려해 본다면 좋은 영화의 흥미로운 예고편을 본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담대교의 매력은 온수에서 장암으로 갈 때에만 있다. 대게 올때는 거리나 시간으로 중계동 정도 쯤에서 타야 그 탁 트이는 맛이 있을 텐데, 올 때에는 아쉬움이나 쓸쓸함이 남기 마련이다. 이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전자의 맛이 더 다가올 것이다.

올 때에는 쓸쓸함이 담겨진다라... 그런 쓸쓸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지는 해를 보면서 돌아오면 그 쓸쓸함을 달랠 수 있을까?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어스름한 저녁노을이 질 때 한강철교를 건너는 낡은 1호선 차를 탈때에 맛볼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날은 맑은데 쨍한 하늘이 잘 안끼는 날씨가 있다면 희뿌연 하늘에 노란 해가 철교의 구조물 사이로 어설프게 걸칠때 참도 구슬프게도 떠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상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낭만적이고도 사소한데 목숨거는 쓸데없는 일 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마인드가 아닐까? 상투적인 예로도 물이 반이나 있네와 반밖에 없네의 차이가 큰차이를 낳게되듯 여행하는 자세로 일상을 살면 팍팍한 서울의 삶도 그 나람의 매력와 이야기들을 하나씩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아침열차를 탈 때, 부산에서온 한국 친구들을 만났다. 런던, 파리를 들르고 암스테르담으로 왔다고 하는데 귀에 꽂히는 갱상도 사투리로 말라죽을 것 같단다. 근데 여행장소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뭔가 다 비슷비슷해서 왜온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답변할 재간이 없었다. 나도 그런편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바이마르에서 L교수님을 만나고 타지생활을 오래하신 분의 이방인의 경험과 여행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씩 듣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가고 피렌체의 역사와 감성을 느껴가면서 여행은 그렇게 과거가 되어가면서 한국땅을 다시 밟았을 때에는 그런 여행을 맛보는 미각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그리움에 사무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었다. 모르기에 안보이는 것이다. 비단 어떤 사전지식뿐만이 아니라 보는 눈썰미가 없어도 안보인다. 그래서 어쩌면 "아는 만큼 또는 가진 것 만큼" (돈이나 이런 재물적인 것들 빼고)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여행의 그리움은 경험이 되어서 이제야 그곳이 좋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