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모순 : 보통사람이 쓰는 팔불출 같은 이야기 (9)

손님사절 2009. 6. 16. 09:52

한국식 소통

고등학교 국어교과서를 보면 봉산탈춤이 나온다. 그 장에서 배우는 내용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마당극이 서양의 극장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느냐에 대한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탈춤은 원형으로 관객이 빙 둘러 앉아 구경하는 형식이고 서양의 극장은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봐야 한다. 여기에서 큰 차이점이 시작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서양의 극장에서는 격식이라는 것이 있다. 연주, 공연 중에는 절대로 잡소리를 내서도 안되고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로는 플래쉬를 터뜨리면 안된다. 물론 요즘에는 핸드폰도 울리면 안된다. 이유인 즉슨, 공연자의 몰입 또는 객석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

우리나라의 마당극은 어떠할까? 일단 서양식으로 진행되는 국립극장의 판소리는 제외하고 시장바닥에서 놀이패가 판을 벌렸다고 생각해보자. 이미 여기서부터 차이가 커진다. 우리나라의 공연은 아무데서나 하는 것이다. 그것이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이건 장터 구석이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판에 있어서 만큼은 Front-End와 Back-End가 없다. 즉, 리얼리티에 있어서는 숨김이 적어도 극중에는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연의 커뮤니케이션은 서양의 1-3자 구도와는 달리 1-2자 구도를 취해서 서로 대화하고 주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초점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위키페디아와 네이버의 지식iN의 차이를 보면 된다. 위키페디아와 지식iN은 둘다 대표적인(지식iN은 한국에서...) 집단지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아까와 같이 1-3자 구도이냐 1-2자 구도이냐에 대해서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위키페디아는 전형석으로 백과사전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즉, 한 주제에 대해서 익명의 누리꾼이 전문적인 지식을 달아놓는 식이다. 따지고 보면 외형상으로는 브리테니커와 큰 차이점은 없어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지식iN에는 대화의 형식을 빌린다. 지식은 답글의 형식을 빌리며 질문 역시 '제가 이런 점이 궁금한데요...'라며 상세히 기술한다. 답을 하는 입장에서도 '잘은 모르겠지만...' 과 같이 불확실성을 솔직히 밝히는가 한편 출처에 '내머리속' 과 같이 경험에 의존하여 지식을 풀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지식iN에서는 대화의 형식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구성원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를테면, 냉무(내용없음)의 글들은 질문자와 답변자 대화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이유로 위키페디아는 전문적인 지식들이 주를 이룬다면 지식iN은 맛집이나 생활 노하우와 같은 생활에 밀접한 소재들이 주를 이룬다. [각주:1]

한국의 이런 문화코드 때문에 그런 것일까? 전 미상원의원인 마이크 크러벨은 우리나라를 두고 직접민주주의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국가로 뽑기도 하였다.[각주:2] 동양에서는 여러 민주화 운동이 있었지만 현재까지를 놓고보면 그래도 민주국가의 틀을 가장 민주국가 답게 지닌 나라는 우리나라다. 일본이 민주국가의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자민당의 일당독재에 가까운 헤게모니는 쓰러질 기미도 안보이고 싱가폴 역시도 40년 전 투둥문제라고 하는 인종문제를 겪고난 뒤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10만명이 거리에 운집하여 정치적 메시지를 외치는 한국의 모습은 이들에 비하자면 아마 '혼란'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점을 미루어 본다면 분명 우리의 문화코드안에는 소통이라는 부분이 숨어 있을 것이다.

과거 박정희의 유신정권은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하여 동서고금의 독재국가에서만 보여지던 헌법을 만들어 냈던 적이 있다. 이 시대 부터 5.18에 이르기까지는 기득권자들이 혼란의 연속이라 느껴서 그런지 우리 교과서에는 민중운동이나 민중소통의 운동에 대해서 상세히 기술하지는 않는다. (재미난 점은 기득권자들 중 시위에 동참했다고 하시는 분들은 이 때에 많은 운동을 하신 것 같은데 딱히 뭘 어찌 했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월의 짐을 짊어지고 사는 현시대의 사람으로서 현재의 문화코드라는 형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지난 세월이 흘려놓은 과거의 기억과 앞으로를 만들어 나갈 상상력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꼭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투쟁적이고 세상이 모순으로 가득차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한다.

  1. 한겨레21 764호 진중권-정재승의 크로스 참조 [본문으로]
  2. 오마이뉴스 09.06.11 "한국은 직접민주주의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국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3553&CMPT_CD=P000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