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 경제공부

아파트 리포트 : 아파트에서 살면 아무래도 이렇게 될 것 같은 예감

손님사절 2009. 12. 28. 14:08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인천공항에 마중나온 형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딱 드는 첫 생각은 “갑갑하다”였다. 우중충한 회색 건물들에 마천루같이 솟은 아파트들이 방벽같이 높다랗게 시야를 막아버리니 벽과 벽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 드는 수 밖에. 아마 그 때 부터인지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서울이나 인천 같은 도시들의 그 건물들 (특히 아파트)은 가시밭 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멀리서 보았듯이 아파트라는 녀석은 그렇게 매력적인 건축물은 아니다. 물론 처음 아파트가 등장했을 때는 그 자체로서 랜드마크가 되었기 때문에 (그 허허벌판 같은 도시에 삐까번쩍하게 솟아있으니) 도시의 미관을 좋게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도시 자체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는 않음은 확실한 듯하다.

이 아파트 리포트는 아파트가 이렇게 도시 속에 녹아 들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시인의 삶에도 녹지 못하는 것을 찾아보고자 한다. 본래 이 글은 아파트 브랜드의 미래를 생각해보다 나온 글로서 “브랜드 리포트 : 아파트 편”으로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환경을 생각하다 나온 결론은 아파트는 ‘살 곳이 못되고 살 것도 못된다.’라는 것이기에 이 글을 쓴다.

아파트의 시대를 한번 구분해 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내가 아는 한에서는 80년대 들어서면서 주요 건설사(현대, 동아, 우성 등)의 주요 직할시(당시에는)를 중심으로 한 건설러쉬가 시작이되면서 구나 몇 개 동의 단위를 중심으로 주거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학교, 상가 등이 위치하게 되었다. 당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파트는 상가-아파트-비아파트주거권의 중간지대적 역할을 했다. 조금 앞서가는 추측을 해보자면 도시의 위화감을 조성하기 시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90년대 초는 신도시의 시대다. 서울의 관점에서도 보면 위성도시를 중심으로하여 이전 80년대의 대단지보다는 더 크지만 하나의 아파트 단지는 규모가 작은 즉, 작은 단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전체적으로는 아파트 숲을 만들어내는 도시가 들어서게 된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인천 연수, 부천 상동, 일산 분당들이 이때부터 주거기능을 담당하는 위성도시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80년대의 주거 집중을 시작으로 한 아파트는 ‘앞서가는 도시민’의 편리한 생활을 바탕으로 계층화에 물꼬를 틀면서 90년대의 신도시의 시대를 열면서 단지의 차원이 아니라 행정구역수준으로 계층화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통해서 주거 형태로서 계층화를 80년대에 만들어 냈으면 ‘아파트가 있는 신도시에 사는 사람’을 통해서 주거 지역으로 계층화를 90년대에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민의 계층화를 통해서 비아파트 주거권을 슬럼화 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아파트의 본질적인 성격인 죄다 똑같은 집. 어느 책에서 나온 말인데 ‘층층이 줄줄이 앉아서 똥누는 집’이라는 표현처럼 생활 방식이 하나같이 똑같아지는 삶의 패턴이 맞물리면 아파트는 가치있게 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전적으로 외부에 과시하는 악세사리적인 역할이 생기면서 본래의 주거기능은 최소한만 수행하게 되고 지역에 따른 입지조건을 통해서 재산가치만 가진 ‘물건’으로 전락해버렸다. 80년대에 아파트를 손에 쥐는 사람들은 90년대 신도시의 시대에 아파트를 갈아타면서 아파트로 일년치 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아파트를 가지고 누가 ‘사는 곳’이라 하겠는가?

물론 건설사들도 그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책은 아파트를 사면 가전제품 주는 수준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좀 더 앞서가봐야 어린이집이 있는 수준이겠지만 이것은 이미 90년대에 다 노인정까지 마련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에서 타개책으로 나온 것이 아파트 브랜드화이다. 이 브랜드화의 본격적인 포문을 여는 업체가 대림산업으로 ‘e-편한세상’을 런칭하면서 진짜 아파트 전쟁의 시대를 만들었다. 건설사는 건설의 이미지를 버리고 가치있게 사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성공적으로 캠페인이 전개되는 듯 하지만 결과가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이미 걸어온 역사가 그렇지 않았던 것을

* 삼성, 현대같은 대기업들을 보면 1등의 전략이 나온다. 먼저 나서지말고 시장을 주시할 것. 선두주자가 출발하면 바짝쫓아서 선두그룹을 형성할 것(이렇게 되면 선두주자처럼 보이니까 선도자의 법칙(마케팅 불변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 변화하는 척 빠르게 따라해라

브랜드 아파트는 소비자에게는 ‘사는 곳’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주기는 했지만 결국 아파트간의 계층화를 불러일으키고 뒤이어 래미안, 힐스테이트 같은 ‘고급’을 기치로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더욱 계층화를 일으키게 되고 아파트의 고급화로 인한 집값상승으로 더욱 값비싼 물건이 되어가버렸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 이제 재개발의 시대가 되면서 8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도시에 복귀가 일어나려고 한다. 집들이 허물리면서 다시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는데 그 아파트가 이제와서 ‘사는 곳’이라 해봐야 20년간 이렇게 값어치 있는 물건이 되었는데 그게 짓는다고 제 기능을 하겠는가

이때까지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ㅁㅁ시’의 한 ‘ㅁㅁ동’에 아파트가 생긴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학교, 동사무소, 상업 등의 지역 기능이 집중된다. 그러나 계획없이 지어진 아파트라서 지역 활성화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계획적인 도시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ㅇㅇ동’에 신도시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리고 땅값이 오르면서 ㅁㅁ동의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를 팔아치우고 우르르 ‘ㅇㅇ동’으로 이사를 간다. 최근에 ㅇㅇ동에 생긴 새 아파트는 뭔가 더 삐까번쩍하다. 다시 이사를 가고 어느정도 살다보니 아파트를 처음샀던 ㅁㅁ동에 우리 아파트같은 삐까번쩍한 아파트가 생긴덴다. 재개발이 시작된거다. 도시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외곽지역보다는 수백배 나아보인다. 이제 다시 이사갈 생각을 한다.

옛날에는 이사를 많이 다니는 것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지만 이제 이사를 많이 다니는 집은 무언가 잭팟이라도 터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련지…

이제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브랜드 아파트까지 왔으니 아파트 외관으로 만들어주는 차별화는 갈때까지 갔다. 아마 있으면 진짜 빅 아이디어가 되겠지. 하지만 없다고 추측하는 것은 이미 하이페리온이나 타워펠리스급의 초고급 호텔형 아파트가 있기에 여기서 더 나아가면 뭐 중간쯤에 계층이 하나더 만들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차별화 되는 것은 또 하나가 나오기는 할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봐도 브랜드아파트시장은 재개발, 재건축과 같이 도심지에 입지하지 않는 이상에야 더 이상의 차별화를 시킬 수 있는 요소 없이 몸집 불리기만 하고 있어 고객들이 관성화 됨에 따라 더 이상의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즉, 브랜드 아파트의 시대가 끝이 날 때가 다 와가니 무언가 다른 요소가 등장해야 한다는 소리다. 마케팅적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시장, 블루오션, 틈새시장 뭐 그런 등등을 개척해야된다.

만약 이 시점에서 아파트 시장이 아파트를 더욱 값어치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지금도 내집마련에 이렇게 허덕이는 판에 더더욱 마련하기는 어려워 질 것이고 정책이 따라가려면 또 몇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즉, ‘사는 것’으로도 정말 전락을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점 쯤에서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정책과 더불어서 진정이 된다면 ‘사는 곳’으로서의 가능성은 조금은 보일 것이다.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앨빈토플러가 제3물결에서 그랬듯 변화는 어디로 튈지는 모른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각 기업의 담당자들의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아이디어가 있다면 내집 마련 경쟁에 지친 고객을 위한 캐피탈이나 금융상품을 낀 아파트가 나오거나 아니면 외곽에 지은 진짜 친환경 아파트(유럽의 집 트렌드를 따온)등 대안은 많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 처럼 우리가 이상향이라고 보는 대안(나쁜 대안은 없지 않은가?) 처럼 좋게만 될리가 없다는 소리다. 이미 아파트의 생애가 그래왔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