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검색결과라서)
음악시간에 배우는 동요중에
아랫집 윗집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일 슬픈일 모-두 내일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라는 노래가 있는데 아마 가사를 읽다보면 멜로디가 생각나
금방 따라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단하다. 초등학교때의 교육이 거의 세뇌의 수준일 정도이니
그런데 이 가사를 좀 곱씹어서 태클을 걸어보려고 한다.
먼저. 앞부분에 이웃사이에 어떤 장벽이 있다는 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생기게 되는 이웃간 무관심을 이야기한다.
뭐 과거 조선시대 이전을 포함한 조상님들과 비교가 불가능 하겠지만
과거 주택에 사는 것보다야 아무래도 아파트 쪽이 더욱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있다.
아무래도 저 가사는 한창 아파트 쪽보다 주택보급이 이루어질때의 일이라고 봐야되는데
중요한 것은 저것이 주택보급에 대한 부작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택보급은 산업화와 근대화와 더불어 생겨나게 된다.
산업화가 진전되면 도시근로자들은 정시출근에 정시 퇴근이라는 스케쥴의 규율이 생겨나는데
우리나라는 60-70년대의 이촌향도 현상이 임노동자로 흡수되었다 쳐도
70-80년대의 이촌향도의 노동력은 임노동자보다는 영세 자영업자의 형태로 흡수가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직종마다 다른 사람들의 소통이 적어질 수 밖에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아파트 동호회등 클럽, 카페가 개설되었는데다
과거부터 이미 부녀회, 반상회등은 늘 있어왔는 현상이기에
이웃간에 가까이 지내자는 것은 이미 해결 될 소지가 보이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우리들의 벽은 우리안에 있을 뿐이지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벽은 우리가 만들어내기보다는 구조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소통의 욕구라는 본능인지는 몰라도 그걸 조금씩 허물어 가려고 한다.
독일인은 유대인은 그렇게 짓밟고, 60년이 좀 더 지나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을 그렇게 짓밟는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논리로 독일인의 유대인 탄압은 당시 경제사정이 나빠지는데에 유대인이 약간의
재산을 더 가지고 있다는 '추측'으로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기반에는 민족주의적 동기가
숨어있기에 유럽은 민족주의에 굉장히 민감하다.
지금 유대인은? 어떻게 이스라엘이 진짜로 건국이 되버리고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유대인이 없는 동안 2000년 동안 살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졸지에 이방인이 되버리고
처음 나온 동요 가사처럼 서로 어울려 잘 살면 되겠다만 아무래도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
가사내용을 다시 곱씹어 보자
이웃간에 사이 좋게 지내는 이유가 단군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면 단군신화를 들춰보는 수 밖에
정말로 곰이 사람으로 변할리는 없겠지만, 저 가사는 단군왕검과 웅녀의 결합으로 자손이 퍼졌다는
이야기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분명 알듯 단군신화는 북방계 이주민과 토착민의 결합으로 해석이되는데 그렇게 되면 마치 고려의
민족 구성처럼 신라계 + 고구려계 민족이 섞여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단군의 자손이라서 이웃간에 가깝다란
논리는 아무래도 어느날 단군왕검이 모험을 하던중 웅녀를 만나 결혼하고 그 자손들이 널리 퍼져살아
그 영역이 넓어지고 고조선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내 옆집에 배달민족의 후예가 아닌자가 살아버리면 이웃간에 도와줄 이유가 없어진다.
마치 과거의 독일인과 지금의 유대인이 저지르는 범죄처럼.
민족주의는 그안에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교통, 통신이 발달하여 다민족 체제가 되어가는
현재로서는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보다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공생, 공존의 관계가 모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제난이 심한 상태에서 미국에서는 금융권에 미국인만
채용하는 상원의 법률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21세기 백호주의라며 비난의 소리가 들린다.
기실 우리나라도 지금 전국민, 한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국력을 신장시켜야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민족주의의 허점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닌가 모르겠다.
어느날 가르치는 한 학생이(중1 올라가는) 북부지방을 왜배우냐며 북한을 싸그리 없애버려야 한덴다
그녀석이 나중에 중국, 일본 배우는 단원에 가니 일본 언제 가라앉냐며 다시 묻는다.
꼭 그렇게 피를봐야, 남을 내리 눌러야 하는 경쟁사회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민족간의 화합이 경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강점기때부터 시작해서 이미 이루어 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생각하는 그 화합이던가?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 그 내부에서도 의견 일치가 힘들다.
마치 임시정부에서도 사회주의-민족주의 논쟁이 있었던것 처럼 갈등은 없을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국제관계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적 이분법이 사라지는 시대가 오려고 하나보다.
유럽식의 지극한 개인주의와 동양의 지극한 민족주의는 20세기 통신의 보급으로 한번의 장벽이
무너진다면, 최근의 흐름은 그 장벽을 다시 세우는데 예전처럼 세우려고 들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한 패러다임이 등장하려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즉, 수정자본주의의 등장이 과거였다면 이제는 수정사회주의가 등장할 시기라고 감히 예측해본다.
(참! 지금 말하는 수정사회주의는 과거 독일에서 일어난 수정주의 논쟁에 의한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고
흔히 말하는 공산주의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그저 한쪽이 있으면 반대가 있듯 그렇게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그러니 나 잡아가지 말라.)
음악시간에 배우는 동요중에
아랫집 윗집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일 슬픈일 모-두 내일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라는 노래가 있는데 아마 가사를 읽다보면 멜로디가 생각나
금방 따라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단하다. 초등학교때의 교육이 거의 세뇌의 수준일 정도이니
그런데 이 가사를 좀 곱씹어서 태클을 걸어보려고 한다.
먼저. 앞부분에 이웃사이에 어떤 장벽이 있다는 말.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생기게 되는 이웃간 무관심을 이야기한다.
뭐 과거 조선시대 이전을 포함한 조상님들과 비교가 불가능 하겠지만
과거 주택에 사는 것보다야 아무래도 아파트 쪽이 더욱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있다.
아무래도 저 가사는 한창 아파트 쪽보다 주택보급이 이루어질때의 일이라고 봐야되는데
중요한 것은 저것이 주택보급에 대한 부작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택보급은 산업화와 근대화와 더불어 생겨나게 된다.
산업화가 진전되면 도시근로자들은 정시출근에 정시 퇴근이라는 스케쥴의 규율이 생겨나는데
우리나라는 60-70년대의 이촌향도 현상이 임노동자로 흡수되었다 쳐도
70-80년대의 이촌향도의 노동력은 임노동자보다는 영세 자영업자의 형태로 흡수가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직종마다 다른 사람들의 소통이 적어질 수 밖에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아파트 동호회등 클럽, 카페가 개설되었는데다
과거부터 이미 부녀회, 반상회등은 늘 있어왔는 현상이기에
이웃간에 가까이 지내자는 것은 이미 해결 될 소지가 보이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우리들의 벽은 우리안에 있을 뿐이지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벽은 우리가 만들어내기보다는 구조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인간의 소통의 욕구라는 본능인지는 몰라도 그걸 조금씩 허물어 가려고 한다.
독일인은 유대인은 그렇게 짓밟고, 60년이 좀 더 지나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을 그렇게 짓밟는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논리로 독일인의 유대인 탄압은 당시 경제사정이 나빠지는데에 유대인이 약간의
재산을 더 가지고 있다는 '추측'으로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기반에는 민족주의적 동기가
숨어있기에 유럽은 민족주의에 굉장히 민감하다.
지금 유대인은? 어떻게 이스라엘이 진짜로 건국이 되버리고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유대인이 없는 동안 2000년 동안 살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졸지에 이방인이 되버리고
처음 나온 동요 가사처럼 서로 어울려 잘 살면 되겠다만 아무래도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
가사내용을 다시 곱씹어 보자
이웃간에 사이 좋게 지내는 이유가 단군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면 단군신화를 들춰보는 수 밖에
정말로 곰이 사람으로 변할리는 없겠지만, 저 가사는 단군왕검과 웅녀의 결합으로 자손이 퍼졌다는
이야기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우리가 분명 알듯 단군신화는 북방계 이주민과 토착민의 결합으로 해석이되는데 그렇게 되면 마치 고려의
민족 구성처럼 신라계 + 고구려계 민족이 섞여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단군의 자손이라서 이웃간에 가깝다란
논리는 아무래도 어느날 단군왕검이 모험을 하던중 웅녀를 만나 결혼하고 그 자손들이 널리 퍼져살아
그 영역이 넓어지고 고조선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내 옆집에 배달민족의 후예가 아닌자가 살아버리면 이웃간에 도와줄 이유가 없어진다.
마치 과거의 독일인과 지금의 유대인이 저지르는 범죄처럼.
민족주의는 그안에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교통, 통신이 발달하여 다민족 체제가 되어가는
현재로서는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보다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공생, 공존의 관계가 모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제난이 심한 상태에서 미국에서는 금융권에 미국인만
채용하는 상원의 법률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21세기 백호주의라며 비난의 소리가 들린다.
기실 우리나라도 지금 전국민, 한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국력을 신장시켜야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민족주의의 허점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닌가 모르겠다.
어느날 가르치는 한 학생이(중1 올라가는) 북부지방을 왜배우냐며 북한을 싸그리 없애버려야 한덴다
그녀석이 나중에 중국, 일본 배우는 단원에 가니 일본 언제 가라앉냐며 다시 묻는다.
꼭 그렇게 피를봐야, 남을 내리 눌러야 하는 경쟁사회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민족간의 화합이 경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강점기때부터 시작해서 이미 이루어 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생각하는 그 화합이던가?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 그 내부에서도 의견 일치가 힘들다.
마치 임시정부에서도 사회주의-민족주의 논쟁이 있었던것 처럼 갈등은 없을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이제 국제관계의 이분법을 넘어 사회적 이분법이 사라지는 시대가 오려고 하나보다.
유럽식의 지극한 개인주의와 동양의 지극한 민족주의는 20세기 통신의 보급으로 한번의 장벽이
무너진다면, 최근의 흐름은 그 장벽을 다시 세우는데 예전처럼 세우려고 들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한 패러다임이 등장하려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즉, 수정자본주의의 등장이 과거였다면 이제는 수정사회주의가 등장할 시기라고 감히 예측해본다.
(참! 지금 말하는 수정사회주의는 과거 독일에서 일어난 수정주의 논쟁에 의한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고
흔히 말하는 공산주의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그저 한쪽이 있으면 반대가 있듯 그렇게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그러니 나 잡아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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