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나, 텍스트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렇게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보니, 말(대화)가 가진 강점을 가졌을 뿐더라 "ㅜㅜ" 나, "^^", 심지어 작↗년↘에→는↘ 과 같이 억양까지도 표현해주니 글이 말보다 못한 것이 점점 줄어드는 판국이다.편지야 그 이전에 통신기술이 없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말못하는 사람 둘이서 필담을 나누어도 이 정도로 빠르고 생동감있게 글을 나누지는 않았을 것이다.(이심전심이라면 뭐 글만 대충 써도 알아먹겠지만...)
바깥과의 단절하고 나서 텍스트로만 소통하는 은둔형외톨이(히키코모리)를 예로 들어볼까? 하루 죙일 말 안하고 살아도 별 어려운 점이 없다. 친구와 전화를 걸기보다는 메시지를 이용하고 카카오톡을 이용해서 서로와 대화하고 SNS의 텍스트로 올려놓으면 언젠가 누가 확인한다. 사진의 시대다, 비디오의 시대다 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의 소통을 지배하는 것은 글이다. 무한도전의 센스 넘치는 자막만봐도 우리 삶의 글의 엄청난 지배는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글이 말을 대신해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쇄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라는 재미없는 이야기는 빼고 글의 특징만 가지고 이야기해봐야겠다. 글이라는 것은 밥과 같다. 글 자체로도 하나의 작품 음악에 글을 붙일 수도 있고, 그림에도 붙일 수도 있고 제목이나 광고 문구, 브랜드 등으로 상징화 시킬 수도 있고 아까 말했던 자막과 같이 말풍선에 글을 쓰는 것 가지 글로 할 수 있는 것들 아니 글로 더 풍부해지는 것들은 굉장히 많다.
글은 절대 쉽지 않다. 말을 하다보면 '망언'이 아닌 이상에야 잠시 새는 이야기는 대화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글쓰다 옆으로새면 독자들에게 날선 비판을 듣는다. 게다가 말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글모르는 사람은 있듯 글이라는 것은 또 따로 배워야한다.
말은 알고 배우려면 글보다 어렵다. 미리 머릿속에 기억을 해두어야하고 목소리도 잘 다듬어놓아야한다. 하지만, 글은 시작하기가 어렵지 참 편리하다. 생각할 시간을 주기도 하고 글쓸적에는 그렇게 쓰기를 권장한다. 그래서, 말과 다르게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잘한 일을 한 경우에는 연설을 시키고 잘못한 일을 한 경우에는 반성문을 쓰게 한다. 얼굴이 자랑스럽고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글은 말보다 생각을 더 많이 담는다. 게다가 내 모자라는 뇌의 기억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편리한 글은 인공적이다. 글과 비슷한 기록의 수단인 그림은 자연의 모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글은 자연을 본뜨기는 했지만 자연에 녹아들어갈 수 없는 확연히 구분되는 형태이다. 벽화와 비석을 비교해보면 가능하다. 벽화에는 사람을 그리든 소를 그리든(라스코 동굴 벽화를 상상해봐라) 자연의 모사이므로 자연의 모습을 닯게된다. 잭슨폴락이 벽화를 그렸다고 해도? 어느 장난기 많은 원숭이가 물감을 벽에다 뿌렸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글은? 소머리를 닯은 A를 썼든, 혀뿌리를 상징한 ‘ㄱ’을 쓰든 자연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갈 수 밖에 없는 형태가 된다. 이렇게 글은 자연과 가장 동떨어진 형태의 인간의 도구이고 자연의 어느것도 대변하지않고 그저 인간의 생각만 나타낼 뿐이다. 그래서 철저히 인공적이다.
그렇지만 글은 진화한다. 언어가 진화하는 만큼도 진화하지만 글을 담는 형식도 진화한다.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서 서사시라는 문학이 탄생하고 철학적 사유가 이루어지며 말이 기록의 수단으로 되는 경우는 구전이 있겠지만 왜곡이 심해진다. 티벳불교 일부에서는 집단 암송을 통해 이 구전의 왜곡을 막기도 한다지만 과연 글만 할까 싶기도하다.? 글은 분명 진화하며 말을 죽여가고 있다. 물론 씨가 마르지는 않을테지만...
'미디어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외된 개인과 영웅의 사이 (3) : 모험 (0) | 2011.10.21 |
---|---|
소외된 개인과 영웅의 차이 (2) : 축제 (0) | 2011.10.05 |
소외된 개인과 영웅의 차이 (1) : 신화 (0) | 201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