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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우리 집에 누가 있을까?

by 손님사절 2011. 7. 11.
#1. 퇴근 본능
 
예전 직장에서 늘 그렇게 10시, 11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해도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노동 착취라는 생각도 들지았않는데다 누가 구태여 야근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다만 나에게는 '지켜야할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그랬다. 잠이야 좀 늦게 자면 되는거고 어제 야근했다고 좀 늦게 출근하면 딱히 욕먹을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지금 직장에서 뭐가 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퇴근시간을 넘기기 시작하면 집에 가고 싶어 좀이 쑤신다. 퀄리티는 대충 맞추면 되고 내가 넘어야할 장벽은 어느샌가 '상사'가 되어있었다. 현실이랑 타협은 한 것인지는 고민을 해봐야 알겠지만 열정이 죽은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그 열정은 아직 살아있다. 난 다만 회사에 충성하고 싶은 열정이 죽었을 뿐이다. 조직의 이해에 충성하는 열정은 내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 지금 집에가고 싶어 죽겠다.



#2. 긍정의 힘

긍정의 힘을 믿는가? 뭐든 긍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다못해 마음으로 중얼거리기라도 해봐라. 이루어질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고 목표를 분명히 세워라. 마음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말기 암환자에게도 치료가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증세가 호전된다는....

어디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참 쉽게 잘사는 방법이 있는데 왜 우리의 삶은 이 모양이냐는 소리를 하고 싶다. 물론 답변은? 나처럼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그렇다고 한다. 이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기업계와 기독교계에서는 이 긍정은 거의 '주문'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기복신앙을 살펴보면 긍정이라는 개념은 참 기가막히게 이해하기 쉬운데다 익숙하기까지 하다. 기본적인 담론은 행복=성공=대박(인생역전)에서 시작되는데 아팠던 몸이 나아진다거나 큰회사에 취직한다거나 로또에 당첨된다거나 하는 것들이 옛날에는 각 지방의 토속신들이 해주었다면 오늘날은 그 신의 자리에 '긍정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았다. 기독교 집안에서는? 물론 우리나라 교회들은 번영신학이 주를 이루니 더 할 말이 있을까? [ 참고기사 : http://bit.ly/nGwh5D, 김진호의 신들의 사회 ]

동전에는 양면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왼손이 있으면 오른손이 있고 하나의 의견이 있으면 다른 반대쪽의 의견도 있다. 우리는 객관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서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야한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사고해야한다. 그래야 성공에 이른다.



#3. 희망사항과 꿈

그 성공의 내용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업의 성공, 개인의 출세..... 또 뭐가있지? 살펴보면 '건강'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그에 앞서 모든 것은 '돈'이 그 바닥에 깔려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지 돈없으면 행복도 없고 건강도 없는 것이다. 지금 좀 재미가 없고 하고 싶은 것 좀 참고 그래야한다. 당신이 혹시 남자라면 흘리지말아야 할 것이 눈물만이 아닌 우리사회는 이 인내를 '수양'에 비유하기도 한다.

개인의 생각이 다르듯이 바라는 가치관 행복도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가 손을 내두르면서 '저짓'을 어떻게 돈을 들이면서 하냐고 하는데 그거야 그 사람 사정이 아닌가? 남의 꿈을 내가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만인보'에나 실릴 이야기고 어느 순간엔가 우리의 행복은 '단란하게 살기'가 되어버렸다. 마음 놓고 결혼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내 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노후 대비까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 의사, 변호사등의 좋은 직업을 가지거나, 대박을 치거나, 아니면 조건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것들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꿈이자 Vision이다. 열정을 바쳐서 이루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무언가 대상이 잘못 잡혔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크리에이티브를 기대하지 말아라.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채울 수 나 있을까?



#4. 장래희망 : 지방직 5급 공무원

어느 학생의 장래희망을 받았는데 지방직 5급 공무원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수십년 전에도 장래희망에는 늘 돈 잘버는 직업을 적어내는 사회였으니 이정도는 충격이라고 볼 수 없다. 세대가 되물림 되면서 문화가 진화했다고 볼 수 밖에.

중학생이 되면 명문 고등학교를 장래희망에 담아두어야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명문 대학교를 장래희망에 담아두어야 하고 대학생이 되면 좋은 직업을 장래희망을 담아두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생각에도 없는 영어를 공부해야하고 전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모두 이룬 사람들의 독기를 따라해야한다.

이러한 사고와 문화가 답습되는 동안에 나 자신에 대한 사고는 얼마나 이루어질까? 정말 농담이 아니라 "지금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얼마나 진지하게 하는지 묻고 싶다. 행복이 돈과 이기주의로 환원된 세계에서 연봉과 출세가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인테리어가 멋진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다. 회사 홈페이지도 장난스럽게 꾸며놓고 사장님도 중년미를 풍기시는 여사장님에 딱봐도 여기는 자유로운 곳이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것이 꿈이라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아왔는지 이메일도 보내고 찾아오기도 하고 그랬단다. 현재 그 회사에 다니는 친구 중에 그렇게 입사한 친구들도 있다. 정말로 물어보고 싶었다. 회사에 들어오면 무얼 하고 싶은지.

누구나 아는 그런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일단 첫번째로 부모님께서 아무런 일상의 터치를 하지 않으신다. (저축 빼고) 일상 외의 터치가 오는 것은 곱게곱게 집을 차리는 것에 위배되는 행위. 이를테면 스스로 나가서 살고싶어요 라던가, 적당히 다니다가 다른 일을 찾아볼래요 라던가와 같은 '꾸준한 부'를 축적하지 못하는 행위를 할 때에 나타난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러다 어디서 선보라고 할까봐 겁난다.) 난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닌데 이미 사회는 나를 그렇게 보고있다. 물론 그렇게 살고있다고 이야기해서 손해 본 적도 없다. 오히려 유용한 쪽이 많았다.

대학생들을 볼 때 그런 친구들이 있다. 마케터가 되고 싶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보면 그들은 결국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한다. 스튜어디스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거나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케터가 되거나 스튜어디스가 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하고싶은 것이 따로 있는데 표현을 못했을 뿐이다. 

나머지는 수단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오는 친구면 그나마 다행이다. 결국에 우리는 경쟁에 이기고 싶어했고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오이디푸스같은 영웅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영웅으로서 주어진 '운명'은 없었다. 오이디푸스의 천복은 '직업'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 지금 우리집에 누가있을까?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집에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고싶은 것'을 하고 싶을 뿐이다. 원초적으로 피로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잠을 잔다거나 놀고싶을 뿐이다. 우리 마음이 심각하게 게으르기 때문일까? 학생들이야 그럴수도 있겠다. 그 정도의 공부를 해대는데 안그런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고싶은 것' 즉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은 사람이라면 남은 것은 '시간'뿐임을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물론 시간을 보내다보면 아니다 싶어서 관두는 경우도 있다. 문제될게 없다. 그저 바꾸고 최고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계속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우리사회에서 그것이 문제되는 것은 그저 살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익이 안생기기 때문에 걱정이 될 뿐이다. 고교생을 마치면 어련히 독립시켜야할 아이들을 끝까지 먹여살려야하고 하다못해 그 애들 대학생을 만들려면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수 밖에 없다. 그 혜택을 받는 아이들 역시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집은 내집은 아니며 생활비빼고 하다보면 모이는 돈은 없다.

결국 내 욕망을 포기해야 할 뿐이다. 공휴일이라도 있으면 선과 악이 대립하는 뻔한 스토리를 갖가지 화려함으로 치장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달래야한다. 목청이 좋은 아니면 몸매가 좋은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누가 가수인지 인정해줘야 한다. 

누구의 이기심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다. 뼈빠지게 10시까지 애들은 공부해야하고 아빠는 일해야한다. 요즘은 엄마도 그래야한단다. 휴일이라 모여도 서로를 나눌 힘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집에 누가있을까?